차돌멩이
- 공개되어 있는 내용이 없어 2011.1.1~2011.7.24 동안 직접 입력해서 올립니다.
- 입력본은 학원출판공사의 학원한국문학전집 4권입니다.
지은이
전영택
출전
???, <1960>
본문
요새 나는 동네 뒤 성벽 밑에 있는 방공호에 사는 최노인을 사귀어서 저녁이면 한번씩 찾아가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나는 최노인과 이야기하는 것이 내 생애를 즐기는 가장 좋은 길이다.
하루는 최노인네 방공호에 갔더니 문이 꼭 닫히고 없다.
암만 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다. 흑 무슨 일이나 없는가 하고 염려가 되어서 대문을 막 두드리고 소리를 질러서 찾아보았으나 종내 소식이 없다.
「고향에 간 모양이군……」
혼잣소리를 하고 나는 허전한 발걸음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최노인은 문에 쇠도 안 잠갔다. 그는 본시 쇠를 잠그는 법이 없다.
「쇠를 잠가 뭘합니까. 무에 있어야지요.」
「누가 와서 집을 점령하면 어찌게.」
「같이 살지요, 머.」
「제 집이라구 주장하구 나가라면?」
「다른 데 가서 또 거처를 마련하시요, 머. 서울에 안적 나 한 몸 담아 있을 곳은 있답니다. 걱정없어요.」
최노인은 이렇게 태평이다.
「하긴 저 위에 또 있던데요. 방공호를 파다가 둔 게 있지 않아요.」
이렇게 대꾸를 하면 최노인은 신이 나는 듯이 무릎을 탁 치고는 금방 눈에 정기가 도는 듯이,
「옳지, 옳지, 맞았어, 맞았어. 왜놈들이 대피소라구 파라구 시켜서 파 놓은 것이 실상은 나 같은 사람을 위해서 뜨뜻이 살 곳을 마련해 둔 게 아니구 뭐야요. 선생님, 하하하하……」
최영감은 이렇게 너털웃음을 털어놓는 것이다.
최노인은 본시 포천군 XX면 율목리(栗木里)에 지금도 조카랑 먼 일가가 있다고 한다.
제일 바툰 사람은 조카요,그 조카는 양자까지 들었으니까 말하면 아들이라면 아들이다.
「아버지, 가셔요. 시골로 가셔요. 가셔서 죽이라도 끼니는 결하지 않구 대접을 할 테니까 어서 시골루 가셔요. 이렇게 계시면 제가 고얀놈이라고 욕을 먹지 않어요? 인제라도 어서 저하구 집으로 가셔요.」
한번은 최윤구라는 조카가 찾아와서 이렇게 자기 집으로 가자고 꽤 정성스럽게 권하더란다. 그럴 때마다 최노인은 빙그레 웃으면서 고개를 쩔레쩔레 흔들고,
「네 말은 고맙다. 하지만 나는 이제 편하구나. 누구 달다 쓰다 나보구 잔말할 사람두 없구, 뉘게 걱정거리가 될 것두 없구 내게는 이게 제일 편하거든. 내가 먹으면 몇 알을 먹겠니, 하루에 밥 한 그릇이면 실컷 먹구두 남는단다. 얘야 내 걱정을랑 하지 말아라. 애여 이다음엘랑 가져오지 말아라. 너희두 자식새끼들하구 식구가 많아서 밥을 죽으로 하는데,어디 나꺼정 생각할 형편이 되니? 애여 다시는 가져오지 말아라. 나 먹을 양식은 있으니까 가지구 가거라. 부디 내 걱정은 하지 말구 가져가거라. 네 볼래? 내 양식을……」
최노인은 유난히 큰 키여서 허리를 구부리고 컴컴한 모퉁이로 가서 자그마한 쌀 항아리를 기울여 보인다.
「나는 너두 잘 알 듯이 나이 팔십이 넘도록 절대로 남의 신세는 안 지구 살았으니까……이렇게 말하면 네가 섭섭히 생각하겠지만 내남 할것없이 어려서는 할 수 없지만 자란 다음엔 누구를 의지하구 살려 구 하는 건 못난 짓이야.」
나는 최노인이 조카에게 모처럼 가지고 왔던 쌀자루를 기어이 지워서 보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최노인이 가회동 꼭대기 성 밑에서 사는지도 벌써 십 년이 훨씬 넘었다. 해방 직후부터 살았으니까 십 년이 넘은 것이다. 아들 하나 있던 것은 일본 시대에 징용 가서 소식을 모르고 마누라는 오래 앓다가 죽고 혼잣몸이 된 뒤에 서울에 올라와서 이 방공호에 들어 살게 되었다.
한동안은 복덕방에 집주름도 해보고 여름이면 부채장사, 겨울이면 엿장사 따위로 내 한 입 먹기는 걱정이 없었다.
「하느님의 덕으루 오력이 성하구 앓지를 않으니까, 혼자 살아두 꽤 살 만해요.」
최노인은 이렇게 허술한 듯이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래두 몇 해 전부터는 대리 심이 없구, 가끔 앓아 눕게 되구, 그리구 정신이 없어서 아무것두 못하지요.」
그래서 최노인은 이 근래에는 꼭 들어앉아서 별로 먼 데 출입은 못한다. 그러나 앓지 않고 기운이 날 때 앉아서 광주리도 엮고 동네 다니면서 도배도 해 주고 화초밭도 만져 주어서 밥벌이를 하는 것이다.
언제든지 한길을 깨끗이 쓸어놓고 어린것 들이 나와 놀면 모두 내 집 아이처럼 넘어지면 일으켜 주고 코 닦아 주고 오줌 뉘어 주고 싸우면 달래 가며 말려 주고……하니깐 동네 아낙네들은 최노인 착하다고 양식도 갖다 주고, 김치도 갖다 주고, 앓으면 죽을 쑤어다 주고 약까지 달여다 주게 되었다.
「최노인은 우리 동네 복영감이야. 」
이런 말이 어느새 동네사람들의 입에 오르게 되었다.
「영감님더러 이 동네에서 복영감이라고 하는 줄을 아시우?」
하면 최노인은,
「그래요? 몰라요. 저야 동네양반들 덕에 살아 가지요. 선생님 같은 이의 신세를 지구 이렇게 벌써 십 년을 살아 오고 있지 않습니까? 그저 고맙지요.」
두 손을 들어 합장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일로 고향엘 갔을까?)
하고 나는 다음날에 또 가 보았으나 다음날도 그대로 문이 닫혀 있고 연 사홀을 소식이 없다.
사흘이 지나서 나는 저녁을 먹고 산보 겸 고무신을 끌고 갔더니, 문이 반만큼 열려 있는 것이 최노인이 돌아온 것이 틀림없다.
「아이구 선생님 오셨구만. 어서 오셔요.」
최노인은 반가이 나를 대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어델 가셔서 여러 날 집을 비우고 계셨어요. 늦바람이 나신 모양이시군.」
나는 이렇게 농담을 붙여 보았다.
「아닌게 아니라 바람이 난 모양입니다. 선생님, 하하하……」
최노인은 여전히 너털웃음을 털어놓는다. 그런데, 아무리 평소에 피차 장난의 말을 하고는 한바탕 웃음판이 터지는 것이 으레껀 있는 일이라고 해도 이번의 이야기는 좀 이상한 데가 있다. 그래서,
「대관절 안 가시던 시골엘 어째 가셨소?」
바짝 대들어 물어 보아도 궁금해서 다녀왔노라고 하고 종내 이야기를 아니하였다.
「그럼 아무런 이야기라두 하셔요. 심심 해서 왔는데 이얘기 좀 하셔요. 영감을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나는 슬쩍 이렇게 졸라 보았다. 최노인은 이야기를 참 잘한다. 어떤 때는 임진왜란 이야기, 어떤 때는 대원대감 이야기, 또 어떤 때는 오성대감 이야기, 또 봉이 김선달 이야기도 곧잘 한다. 그리고 자꾸 조르면 자기 이야기도 하는 수가 있다.
자기는 일본 시대에 순사로 좀 다닌 일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순사라는 이름도 얻어 보고, 나리 나리 하고 나리 소리를 들어 본 일이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하자면 제 자랑이 될 테니까, 그 이야기는 안할 테야요.」
최노인은 순사 다닌 이야기를 하려다가 멈춰 버리고 꽁초를 붙여 무는 것이다.
「이제 자랑을 하시면 어떱니까? 자랑을 하실 게 있으면 하셔야지요. 어서 이야기 하셔요.」
이렇게 권해 보았지만 종내 이야기를 아니 하고 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다.
「내 이야기 하나 하지요. 이건 자랑이 아니라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인제는 선생님하구는 숭허물이 없어졌으니 이야기를 해두 괜치않지요.」
하고 먼 옛날 일을 곰곰이 생각하는 듯이 한 참 말이 없다가 슬금슬금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다.
밤나무골 권씨 촌은 옛날에는 부촌이요, 큰 마을이었지마는 한번 동네에 괴질이 들고 또 한번은 살인 사건이 생기고 또 불이 나고 해서 이럭저럭 떠나는 집이 많아서 나중에는 몇 집 안 남고 쓸쓸한 동네가 되어 버렸다.
「성황나무를 찍어서 동네가 망했어.」
성황나무가 쌍으로 섰었는데 그걸 하나 동네에 떠들어와서 살던 술주정뱅이가 그 성황 나무 때문에 노름판에서 돈을 떼었다고 얼토당토 않은 소리를 하면서 찍은 다음으로부터 황새가 쌍쌍이 와서 좌우 나무에 한 쌍씩 둥지를 틀고 살던 것이 한 나무를 찍은 다음부터는 그 황새들도 안 오고 동네가 차차 망조가 들었는지 자꾸 언짢은 일만 생기고, 불길한 사건이 뒤를 이어 일어나면서 젊은이들이 변변치 못한 일에도 피를 홀리고 싸우고 대수롭지 아니한 일에 서로 원수를 지고 술집과 노름판만 늘어 가다가 짜장 기름이 돌고 번지르하던 동네가 그 어느새 여기저기 집 헐린 돌무더기만 눈에 띄는 쓸쓸한 고장이 되어 버렸다. 주인이 없는 빈 집같이 쓸쓸했다.
그러던 밤나무골에도 봄이 찾아왔다. 뒷산과 앞산에 따뜻한 햇빛이 따뜻이 내려쬐고, 뒷산과 앞산에 아지랭이 아롱거리고 종달새가 쪼리쫑쪼리쫑 지저귀고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와서 빨래줄에 쌍쌍이 앉아서 지지배배 지지배배 재롱을 떨고 있다. 이 동네에도 봄소식이 활짝 퍼져 있는 것이다.
「복네야, 나물 캐러 가자.」
「복남아, 나물 캐러 가자.」
두 아이는 서로 불러서 들로 언덕으로 나물을 캐러 다니고 아랫동네 아이들도 소래재 접둥이 캐러 밤나뭇재로 두 아이의 뒤를 따라온다.
우리 고향 동네는
꽃 피는 동산
복숭아 살구꽃 울긋불긋
꽃 피는 동산
봄의 앞잡이인 양 아이들이 흥겨운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사방으로 퍼지니 폐허같이 쓸쓸하던 밤나무골에도 새 희망과 서기가 찬 것 같다.
누가 지어 주었는지, 권씨집 딸애기는 복네요, 최씨집 아들은 복남(福男)이었다. 이름조차 남매 같다.
권씨 문중에 제일 가난하고 보잘것 없는 한 집이 남아 살다가 아들이 장가들어 첫딸을 낳았는데 얼굴이 환하게 잘나고 눈이 맑아서 귀엽고도 얌전하게 태어났고, 본시는 권씨네 종가에 소작인을 하던 사람으로 최씨 노인네가 간신히 아들을 장가 보내 며느리를 맞아서 첫아들을 낳았는데 귀가 큼직하고 눈이 크고도 또릿또릿하고 정기가 있는데 입이 나부죽하고 이마가 반듯한 것이 귀인의 모습이 있다고 보는 사람마다 칭찬이 벌어지는 형편이다.
앞뒷집에 살고 나이도 거의 같은 복네와 복남이는 유난히도 의가 좋아서 아주 어려서부터 서로 어깨를 끼고 손목을 잡고 다니고 정답게 소꿉장난을 하였다. 일 년이면 일 년 내내 한번도 싸우는 법이 없었다. 하나는 사내요, 하나는 계집애라도 한동안 그런 것도 모르고 지낼 동안은 말할 것도 없고 나중에 대여섯 살 된 다음에도 한모양으로 정답게 지냈다.
「복네와 복남이는 쌍둥이 같다.」
「복네와 복남이는 남매 같다.」
두 집에서도 별로 가리지 않고 그대로 내 버려 두었다. 실상 이 밤나무골 본동에는 본래 살던 사람으로 복네네와 두 집밖에 없었다. 한참 나가서 신작로께 있는 주막 동네에는 몇 집이 있고 아이들도 있었지만 본동에는 복네와 복남이 둘밖에 없으니까 두 아이가 동무삼아 놀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두 집에서도 무심히 내버려 두었다.
「세상이 변해서 개화 세상이 됐는데 양반 상놈 가릴 게 있나?」
복네 할아버지는 가끔 이렇게 말하고 두 집이 한집안처럼 가까이 지냈다.
복네와 복남이는 여덟 아홉 살이 되도록 쌍둥이같이 남매처럼 의좋게 지냈다. 복네네 집에서는 복남이를 내 집 아이처럼 생각하고 복남이네 집에서는 복네를 내 집 아이나 다름없이 귀애하고 두 아이가 같이 노는 것도 무심히 내버려 두었던 것이다.
두 아이는 눈만 뜨면 소곤소곤 이야기도 하고 히히 해해 웃기도 잘하면서 같이 놀고 같이 다니고 잘 때가 되어서야 헤어졌다.
복남이와 복네는 이렇게 자라서 어느새 열 살이 넘었다.
어느 해 가을이었다. 늦은 가을이었다. 아카시아잎이 찬 바람에 우수수 떨어져서 한길에 쌓였다. 밤이었다.
「복네는 읍으로 간대.」
「왜?.
「읍의 복네 오춘 할머니가 양딸로 데려간대. 왜 그 혼자 사시는 할머니 있다지 않어? 그 할머니가 양딸로 데려간대. 데려다 공부시킨대.」
복남이는 플깃 잠이 들려다가 어머니 아버지가 이야기하는 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무어, 복네가 읍으로 간대? 데려다 공부 시킨대?)
「엄마 참말이야? 복네가 읍으로 간대?」
복남이는 종내 엄마를 불러 물어 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다더라.」
복남이는 밤을 뜬눈으로 새우고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는 참에 복네를 찾아가려다가 억지로 몇 시간을 참아서 복네네 집으로 갔다.
마침 복네가 대문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맑고 까만 눈을 깜박거리고 나온다.
「나는 우리 할머니 따라 읍으로 간다누.」
「너는 좋겠다.」
복남이의 큰 눈에는 눈물이 글썽글썽해졌다.
「그래두 너하구 못 노는 게 안됐지.」
「…………」
「가끔 집에 올걸, 머!」
복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까만 눈을 깜박거리고 달음박질로 뛰어 들어가 버리는 것이다.
그 이튿날 아침에 복남이는 복네가 저희 어머니와 할머니를 따라서 읍으로 떠나가는 것을 바라보다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뒷산 밤나무숲을 지나서 제일 높은 언덕으로 올라 갔다.
신작로 큰길엔 흰 옷 입은 사람들이 가물 거리는 것이 잠깐 보였으나 이내 산모서리로 돌아갔는지 혼적도 없어지고 아무것도 안 보였다. 복남이 큰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복남이는 낮이 퍽 기울어서야 집으로 돌아 왔다. 집에 와서도 아무 말이 없었다. 어머니 와 아버지도 별 말이 없었다.
겨울이 지나고 설 때가 거의 되어서 복네는 때때옷을 입고 집에 왔다.
「복남아, 나는 너 보고 싶어 왔다.」
맑은 눈을 깜박거리고 웃는다.
「참말?」
「참말이지, 그럼.」
「나두 너 보고 싶어서 날마다 네 생각만 하면서 밥도 잘 안 먹었다.」
처음에는 어색해서 말도 잘 못하던 복남이와 복네는 몇 날을 지내서는 뒷산으로 놀러 가서 제법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설을 지내고 복네는 다시 읍으로 가고 복남이는 내버린 외짝 신발처럼 남아서 쓸쓸한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복남이는 농군의 아들이었다.
「너도 인제는 일을 배워야 한다.」
이것이 아버지의 명령이었다. 복남이는 나이가 먹어서 목소리가 변하고 앞가슴이 제법 한 사나이꼴이 메워졌다.
복남이는 소를 먹이러 들에 나가고 한 짐씩 잔뜩 꼴을 깎아서 구럭에 넣었다가 거름통에 두는 것이 일과였다. 그러면서〈우리 고향 동네는 꽃피는 동산〉을 부르기를 잊지 않았다.
그해 가을에 복네는 별안간 집으로 와 버렸다.
복네는 다시 밤나무골 사람이 되었다. 밤나무골 사람이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였다.
학교 보낸다는 것은 말뿐이요,실상은 할머니 몸종이나 다름없었다. 밤에는 할머니 다리치기, 낮에는 하루 몇 번이고 방걸레 치기, 할머니와 손님의 담뱃불 붙이기와 술 심부름이 고작 일이었다. 그래서 복네는 집에 잠깐 다녀온다고 하고 달려온 것이다.
「너 그새 예뻐졌구나.」
복남이는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큰 입을 더 크게 열었다.
「너 그새 컸구나!」
복네와 복남이는 조용한 틈이 생겨서 둘이 만나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서로 얼굴을 붉혔다.
「나는 농사꾼이 됐단다.」 「나는 농사꾼이 좋아. 읍엣사람들은 싫더라. 담뱃대만 피구 술들만 먹구……」
「나는 네가 아주 날 잊어버리고 읍사람이 되는 줄 알았다.」
「잊어버리긴, 자꾸 너랑 같이 놀던 생각만 나더라.」
「글쎄 그러면 그렇지! 복네야, 참말 네나 내나 이 밤나무골을 떠나면 안돼! 밤나무 골서 농사꾼이 돼서 살라는 거야. 다 헐렸던 밤나무골을 다시 일으켜 세우라는 거야.」
「너하구, 나하구, 밤나무골서 살자!」
복네는 복남이의 검고 씩씩한 얼굴을 쳐다보고 자기가 한 말이 부끄러워서 고개를 돌렸다.
「복네야, 우리 면에두 보통학교가 선다더라.」
「참말이야?」
「참말이구말구, 우리 아버지가 면소에 갔다가 듣구 왔는걸. 면장님한테 분명히 듣고 왔는걸.」
복남이와 복네는 두 손을 맞잡고 기뻐 뛰었다.
이듬해 봄부터 복남이와 복네는 십 리나 거의 되는 면소 옆에 있는 학교엘 다니기를 시작하였다. 가는 길에는 꽤 높은 고개를 두엇 넘는 데가 있다. 그래도 복네는 복남이와 같이 다니기 때문에 쓸쓸하지도 무섭지도 않았다. 복남이도 복네와 같이 다니는 것이 좋았다.
복남이는 늦게 입학해서도 공부를 잘 했다. 글씨도 잘 썼다.
「이거 네가 썼느냐?」
선생은 가끔 복남이 칭찬을 했다. 제 공부를 다 해놓고는 복네는 물론 다른 아이 공부까지 도와 주었다.
복남이는 가끔 엉뚱한 일을 한다. 한번은 반에서 십 원짜리 돈이 없어졌는데 의심받는 아이를 알고도 제가 주웠노라고 돈을 내놓았다가 선생님에게,
「왜 진작 내놓지 못했느냐?」
하고 톡톡히 책망을 들은 일이 있다.
「여보 복남이 아부지, 저것들이 낫살이 먹어 가는데 너머 가까와 가니 걱정이야.」
「글쎄, 아닌게아니라 걱정인데!」
「내외를 삼아 주었으면 좋겠지만……」
「천만에, 권씨네가 왜 우리하구 할랍디까? 그런 소리 하지 말우.」
복남이네 집에서 이런 걱정을 하게까지 된 것은 복남이가 벌써 육학년이 되고 시작을 늦게 했으니까 나이로 말하면 복남이는 열 일곱, 복네는 열 여섯, 다 숙성해 가는 것이 완연하기 때문이었다.
「요새 복남이 음성이 변해졌지.」
「참 그래, 음성이 변했어, 그리구 저 복네 말이야, 젖가슴이 완연히 달라졌읍디다.」
이렇게 복남이 아버지 어머니가 수군거리는 어느 날이었다.
음력 오월 그믐이라, 하지가 되고 보니 상당히 더운 날이었다. 복남이와 복네는 같이 학교에서 오다가 으슥한 길가 개울물에서 세수를 하고 발을 쉬고 씻고 앉았다.
「나는 더워서 목욕할래.」
「목욕하지, 머.」
복남이는 길 아래로 한참 내려가서 목욕을 하고 올라왔다. 올라와 보니 복네가 없다. 책 보가 그 자리에 놓여 있으니 개울 위로 올라 간 모양이다, 하고 슬금슬금 위로 올라가 보았다.
「이애는! 오지 말아!」
복네가 소리를 지르면서 저고리를 바삐 주워 입는 것이다. 복남이는 어느새 복네의 불룩해진 젖가슴을 본 것이다.
「난 먼저 갈 테야.」
복네는 뒤도 안 돌아보고 달음질쳐 가는 것이다.
복남이는 뒤로 천천히 따라갔다. 공연히 얼굴이 후끈거려지고 숨이 가빠서 따라가기가 거북스러웠다. 복네는 벌써 한 고개를 넘어가고 보이질 않는다.
「이 돌 이쁘지, 이런 돌 봤어?」
기다리던 복네가 웃으며 손에 든 작은 차돌멩이 하나를 내보인다. 갸름한 돌이 예뻤다.
「예쁜데! 붉고 아롱아롱한 무늬가 복네 눈동자 같애!」
복남이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오자 복네는 얼굴을 약간 붉히면서,
「이것 줄까?」
「그런 예쁜 건 여자나 가지지.」
「그럼 우리 노나 가질까?」
「그래그래, 노나 가져, 내 돌로 깰께.」
반들반들하고 갸름한 차돌멩이를 절반을 곱게 깨서 둘이 하나씩 노나 가졌다. 저마다 주머니에 잘 간수해 넣었다. 말은 아니해도 그것은 서로 길이길이 잊지 말자는 정표였다.
두 사람은 요새도 가끔 노래를 부르면서 같이 뒷산 밤나무 동산에 갔다.
그러는 동안 걱정은 복남이네보다도 복네네가 더 걱정이었다. 다행히 복네 아버지는 성품이며 생각이 썩 트인 사람이길래 여태 참아 왔지 미상불 걱정이 아닌 게 아니었다.
복네는 아버지 어머니에게 톡톡히 꾸중을 들었다. 그럴 때마다 복네는 고개만 숙이고 아무 말이 없었다.
삼 년이란 세월이 지나갔다. 복네는 흔히 읍의 양할머니가 외가집에 가 있고 복남이는 집안일이 바쁘기 때문에 몇 달에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 복남이는 장에 갔다 오고 마침 복네는 집에 다니러 오고 하는 기회에 한 번 만난 일이 있다. 그런데 그때에는 복네는 복남이를 살살 피하면서 울기만 하고 아무말도 못하고 있고 복남이는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복네를 노려보다가 돌아서서 오면서 주먹으로 눈물을 씻었다.
복네는 정혼을 했다는 것이다. 아직 추위가 풀리지 아니한 이른 봄날이었다.
복남이는 세상에 나서 처음으로 주재소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새웠다.
「이 자식아, 어린 자식이 남의 집 처녀를 데리고 달아나서 어쩔 셈이냐!」
「아니야요, 아니야요. 나리님, 아니야요.」
「아니야가 뭐야, 싼노매 새끼 씨끄로부다.」
한국 사람이 왜놈인 체하면서 뺨을 찰각찰각 눈에서 불이 나게 때린다.
복남이는 지난밤에 구류간에서 밤새도록 생각한 결과에 자주 무늬 차돌을 생각하였다.
두 사람이 서로 일생을 같이하자는 표로 돌을 깨어 한 조각씩 가진 것이 있다고 호주머니의 자주 무늬 차돌 반 조각을 내놓았다.
「이고가 뭐야? 거짓말이 마라!」
순사는 마룻바닥에 집어 동당이를 치면서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 또 뺨을 치고 구둣발로 걷어차고 자기 말만 말이라 하고 이쪽 말은 도대체 들어 주질 않는다.
옆에 있던 일본 순사는 씽긋씽긋 웃기만 하고 앉아 있다가 담배를 피워 물고 일어나 버린다. 한국인 순사도 복남이를 내버려두고 나가 버리는 것이다. 사람을 꿇어앉혀 놓고 종일 가도 소식이 없다.
(응! 나도 순사가 되리라.) 복남이는 이를 악물고 결심했다.
「잔소리가 너무 길어졌읍니다. 선생님, 이 최복남이란 소년이 바루 이 늙은이랍니다, 하하하하.」
최노인도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다가 별안간 머리를 돌려서 감개무량한 태도다. 웃기는 웃지만 먼 옛날 기억이 되살아 오는 듯이 눈을 감고 판자쪽 번한 문짝을 향해 바라 본다.
복네네 집은 다 읍으로 이사를 하기로 하고, 이사만 하면 곧 읍의 경찰서 순사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너 순사 마누라 될 테냐?」
「난 싫어, 순사 마누라.」
「그럼 나하구 가자, 영주로 가자. 우리 고모네 사는 영주로 가자.」
둘이 의논이 맞아서 둘은 양평 쪽 가는 길로 높은 영을 넘어서 날이 저물어졌기 때문에 주막에서 하루를 묵어 가려다가 읍에서 연락이 와서 주재소 순사에게 붙잡힌 것이다.
「복네 아버지는 순사를 대단히 높고 장한 사람으로 알았던 모양이어서 어려서는 평시에, 복남이 저만하면 농사꾼이라 저 하나 구실 할 테니까 우리 복네하고 혼인을 맺아 주지 하고 늘 마누라하고 의논을 하고 우리 어머니 아버지하고도 대강 의논을 헌 일이 있었다는데 갑자기 마음이 변했던 모양이었지요.」
「그대에 영감은 얼마나 기맥히고 분했을까, 에익!」
나는 분해함을 참지 못하는 듯이 침을 삼켰다.
「게다가 주재소 순사란 녀석이 얼마나 세도를 부리는지!『에익, 나도 순사가 되리라』하고 결심을 단단히 했답니다.」
「그래요? 그래 어떻게 됐지요?」
나는 복네와 차돌 일이 궁금해서 캐물었더니, 맞춰 본 결과 내 말이 거짓말이 아닌 것은 증명이 되기는 하였으나 복네는 종내 잃어버리고 결국 순사의 아내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차돌은 어찌되었느냐고 나는 다시 캐물었다. 최노인은 웃기만 하고 대답이 없더니,
「선생님 보실래요?」
하면서 허리에 찼던 염낭주머니를 풀어 가지고 그 속에서 꽁꽁 쌌던 쌈지 하나를 꺼내더니만 과연 조그만 돌 한 개를 내놓는다.
「보셔요, 이겁니다. 순사가 웃으면서 모두 내주던 걸요, 하하하하하……」
최노인은 쓸쓸한 웃음을 웃어 보인다.
최노인의 그 뒤의 이야기는 이렇다. ——
자랑이 되기 때문에 이야기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밤나무골을 떠나지 말자고 복네와 같이 맹세하고 약속한 자신이 그 맹세를 깨뜨렸다.
농사꾼 복남이는 호밋자루 낫자루를 버리고 칼자루를 잡게 되었다.
〈너하구 나하구 밤나무골서 살자〉하던 복네가 약속을 깨뜨렸다.
청년 복남이는 복네가 어려서 약속하던 소리를 더듬어 되살리고 빨간 얼굴을 돌이키던 모습을 눈앞에 그려 보면서 원망스러운 한숨을 터뜨렸으나 복네는 약자요, 자기는 남자로서 스스로 세운 맹세를 깨뜨린 것이 부끄럽다는 것이다.
(내가 순사가 되고 싶어서 된 것인가, 저 때문에 됐지……)
복남이는 속으로 원망하고 변명을 해 보았으나 암만해도 부끄러운 것은 왜놈의 앞잡이 순사가 된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내 마음은 변치 않는다.〉비록 순사질은 해먹어도 내 마음만은 변치 않는다고 복남이는 마음에 다시금 다졌다. 입술을 깨물고 결심했다.
다음해 정월에 복남이는 수원 경찰서로 전근되었다가 제암리 주재소 근무가 되었다.
몇 달이 되어서 독립 만세 사건이 터졌다는 것이다.
「만세, 만세, 대한독립 만세.」
예배당에서 만세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나온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하여 일본 순사도 멍하니 구경하였다.
「잡아라, 잡아라! 야소놈들 잡아라, 목사 잡아라.」
본서의 지시를 받던 소장 순사는 눈이 빨개서 덤빈다.
3월 1일이 지나고 그럭저럭 일주일이 지났다. 본서에서 동료 순사 한 사람과 일본 순사 한 사람이 나와서, 최복남이는 순사 복장을 벗기우고 공공 묶여서 끌려갔다.
그리고 그 뒤에 제암리 예배당은 교인이 가득 모인 채 문에 못을 박고 불을 질러서 안에 있던 교인이 몽땅 재가 되었다.
「선생님, 이거 보세요. 이거 그때 고문당할 때 얻은 숭입니다.」
최노인온 팔과 옆구리에 커다란 흉자리를 옷을 벗고 보인다.
나이 많은 전도사와 남녀 학생 몇 사람을 미리 연락해서 도망시켰다는 죄로 순사 파면은 물론이요, 코에 물 붓기, 팔과 다리에 몽둥이를 넣고 젖히기와 갖은 고문을 당한 것이다.
사실을 순순히 자백했으나 그밖에 더 있으리라고 강박하며 고문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순사도 쫓겨났거니와 밤나무골을 갈래야 갈 수가 없었지요. 그녀석들 주목과 힐난에 살 수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나는 원산으로 평양으로 대구와 부산으로 떠돌아다녔지요. 그러는 동안에 아버지 어머니는 다 돌아가시고 혈혈단신 홀가분한 몸으로 십 삼 도 강산 구경이나 하면서 돌아다니니 참 좋더구만요, 허허허허……」
복네하고 도망하다가 잡히는 바람에 아니 꼽고 분해서 순사가 되긴 했지만 최노인은 사람 한번 때려보지 못하고 도적 한번 못 잡고 불에 타 죽을 동포 다섯 사람을 살렸다는 자랑 아닌 자랑이었다.
「네, 그러는 동안에 여편네라고 이것저것 데리고 살았지요.」
최노인은 다시 이야기를 꺼낸다.
「어머니가 고향 근처에서 촌 처녀 하나를 얻어 주셔서 좀 살다가 하두 바보 천치 같아서 보내 버렸지요. 그리구는 순사로 들어가서 읍에 색주가집에 있는 어린 걸 하나 데려다 살림이라고 하다가 그건 또 행실이 사나워서 내가 홧김에 손질을 가끔 하니까 그댔겠지, 내가 출장갔다 오니까 값진 물건을 흠빡 싸 가지고 달아나 버렸지요. 그리고는 혼자 살 수 있느냐고 친구들이 권하면서 나이 먹은 과댁 하나를 소개해 주어서 좀 살았는데 이건 또 밤낮 앓기만 하구 누워서 내가 되레 밥을 지어 대접하구 시중을 하게 되는 걸 삼 년을 그러다 그만 죽었으니 장사만 치렀지요. 그게 바로 해방되던 봄입니다. 그리구는 쭉 혼자 살았지요. 혼자 사는 게 제일 편해요. 선생님 보시듯이 저는 편합니다. 무슨 걱정이 있읍니까? 나한 몸 얻어먹었으면 고만이지 식구를 먹여 살릴 걱정이 있읍니까? 여편네가 있으면 양단저고리를 해 달라,나이롱 치마를 해 달라, 귀찮게 굴 텐데 그런 걱정이 있읍니까. 그뿐입니까? 집 걱정이 있읍니까. 그렇지요 선생님, 남들은 도둑이 올까봐 높은 담장에다 바리케 이드라나 하는걸 치구 세파트를 기르고, 저만 편히 살아 보겠다고 야단들이지만, 저는 판자문이나 꼭 닫아 두면 고만이거든요……너무 제 소리만 오래 지껼여서, 선생님 죄송합니다.」
나는 시간이 지나고 밤이 깊어 가기에 최노인을 작별하고 집으로 내려왔다. 마지막에 높은 담장 이야기는 마치 나더러 들으라고 하는 말 같아서 듣기가 거북했다.
(최노인은 사편회 비평인데!)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돌아왔다.
나는 무얼 좀 상고하고 끄적거려 놓을 것이 있어서 꽤 여러 날 동안 골몰하게 지냈기 때문에 최노인을 방문하지 못했다.
「요새 최노인이 어디 갔는지 안 보이던 데요?」
아내의 말을 듣고 궁금하기도 하고 머리도 쉴 겸 나는 저녁을 먹고 최노인네집을 찾아 올라갔다. 밖에서 듣노라니까, 누가 왔는지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가 들린다. 가만히 들어보니 최노인의 상대자는 분명히 여성의 음성이다. 그래서 좀 머뭇거리다가 영감님, 영감님, 하고 찾았더니 내 목소리를 알아챈 최노인은 방문을 열고 반가이 나를 맞이한다.
「선생님, 제 마누라올시다. 그새 어째 통 아니 오셨어요.」
최노인은 매우 즐겁고 만족한 듯이, 늙었지만 눈매가 곱고 얼굴의 윤곽이 바르게 생긴 할머니를 마누라라고 소개를 하는 것 이다. 마누라는 최노인의 옆에 바짝 앉아 있다가 일어서려고 하는 것이다. 내가 웬일 인가 하고 어리둥절하는 눈치를 보고,
「이 사람이 바루 밤나무골 복네랍니다.」
「에구마니, 그런 말씀을 손님에게……」
마누란 매우 당황한 모양으로 얼굴을 모로 돌린다.
「이 선생님은 스스롭게 지낼 분이 아니야. 이웃간에, 이웃간이라기보다두 나하구는 친동기간이나 못지않게 가까이 지내는 터이니깐 마누라두 그렇게 알구 지내야 돼.」
「이웃에 사는 김이란 사람입니다.」
「그러세요, 몰라뵙구……」
마누라는 고개를 약간 숙여서 인사를 한다.
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그 재미나는 차돌멩이 생각을 하고 웃으면서 앉아 있었다.
최노인은 자기 마누라에게 내 소개를 늘어 놓는다. 유명한 학자니,자선가니, 그리고 자기에게 고맙게 해 준다는 이야기며 거지가 오면 반드시 잘 대접해 보내지 그냥 돌려보내는 법이 없다느니,한번은 갓 쓴 노인 걸인을 상에 받쳐서 잘 대접했더니,『대대 손손이 부자질하시구 자손 만대에 영달하고 창성하소사.』핑장한 축원을 들은 일이 있다는 이야기를 내게 들었노라고 내가 장난삼아 옮긴 이야기까지 늘어놓는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 돼서 옛날의 복네가 최노인의 마누라가 되었는지 그 일만이 궁금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수줍어하는 마누라 앞에서 그 이야기를 시켜서 듣자고 할 수 없어서 그날은 그냥 돌아 왔다.
(그래서 몇 차례나 시골을 다녔군!)
나는 혼자서 짐작을 할 뿐이었다.
그런지 얼마를 지나서 눈도 안 오고 강추위로 몹시 추운 겨울날이었다.
「선생님 계십니까?」
최영감은 뜻밖에 우리 집을 찾아왔다.
「선생님, 마누라가 앓아요, 대단해요. 온 몸이 몹시 달구 대단해요.」
나는 집에 있는 해열제를 가지고 최노인의 뒤를 따라갔다.
「아들한테 알려 줘야 할 텐데……여보, 아들한테 알립시다. 선생님더러 수고를 좀 해 주십사구 해서 편지를 합시다.」
「아드님이 계시구만, 내 편질 써드리지요.」
깡깡 않고 있던 마누라는 내 말을 듣고 여윈 턱을 살래살래 좌우로 흔든다. 싫다는 것이다.
「그만둬요, 알릴 것 없어요.」
영감의 소매를 잡아 끌어서 귀엣말을 하는 것이다.
영감만 옆에 있으면 그만이지, 이제 아들한테 알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마누라의 독감은 내가 갖다 준 약을 먹은 효과가 났는지 몇 날이 지나서 열이 많이 내리고 일어나 앉게까지 되었다.
「선생님의 덕에 마누라가 일어났어요.」
「영감의 정성으로 낫었지요.」
밤을 꼬박꼬박 새면서 마누라를 간호하는 그 정성은 대단하였다. 최영감은 여간 기뻐하지 아니한다.
그럭저럭 추위가 풀리고 음력설도 지나서 따뜻한 삼월이 되었다. 하룻저녁은 최영감을 찾았더니, 마누라가 또 앓는다는 것이다. 나는 전만 여기고 또 해열제를 보내고, 미음이나 죽을 쑤어 드리라고 집에 있는 쌀과 좁쌀 되를 보냈다.
「마누라가 죽었어요, 선생님. 마누라가 죽었어요. 이 일을 어찌합니까, 선생님.」
뒤로 곧 올라가 보았더니 최노인은 방공호 밖에 주저앉아서 통곡을 하는 것이다.
「장례는 염려 마십시오. 내가 맡아 해드릴 테니……」
나는 나도 좀 내고, 동네 친구들에게 이야기해서 장례 비용을 마련해 놓고 준비를 하도록 한 뒤 이튿날 아침에 일꾼을 한 사람 데리고 다시 올라가 보았다.
사람 기척이 없다. 조용하다. 영감님, 영감님,불러 보아도 소식이 없다. 데리고 갔던 사람하고 같이 문을 열어 보았다. 일꾼이 놀라는 음성으로,
「영감님두 돌아가셨는데요!」
복남이는 복네 옆에 정답게 누워 자고 있다. 복네 손에는 작은 차돌멩이가 쥐여 있었다.
마누라 매장하려고 준비한 것으로 두 늙은이 시체를 같이 모셔서 망우리 묘지에 합장을 하였다.
<19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