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닭

흰 닭

  • 공개되어 있는 내용이 없어 2011.7.31~2011.8.10일 직접 입력해서 올립니다.
  • 입력본은 학원출판공사의 학원한국문학전집 4권입니다.

지은이

전영택

출전

?, <1925>

본문

1

우리 집에는 한동안 햇닭 세 마리가 있었다. 다같이 암탉이었으나 그중 한 마리는 흰 닭이었다. 그 흰 닭은 처음에 사올 때부터 우리의 주의를 끌었다. 그 하얀 털의 고른 것과 그 기름기 있는 빛깔이며, 또 고개를 까뜩까뜩하며 다니는 그 걸음걸이가 어떻게 예쁘고 점잖은지 사람으로 치면 분명히 공주의 위격을 가졌다.

2

그립던 벗이 먼 곳으로부터 왔다. 멀리서 온 벗을 무엇으로써 차려 대접할까. 나는 어려서부터 끔찍이 반갑고 은혜스러운 손님에게는 종자 암탉을 잡아 대접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또 내가 몸소 나그네가 되었을 때에 닭으로 대접받은 일이 흔히 있었다. 더구나 여러 가지로 맛나고 빛나는 요리를 만들 줄은 모르기도 하려니와 복거리 여름이라 만들기가 괴롭기도 하여서 간단히 있는 닭을 잡아 대접하기로 내 아내와 작정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적지 않은 희생이요, 또한 큰일이다. 왜 그런고 하니, 그 닭은 약에 쓰려고 사 왔던 것이요, 닭을 잡으려면 내가 손수 그것을 죽이지 않으면 안되는데, 내게는 그것이 여간 큰일이 아니다.

내가 닭을 죽이기 시작한 것은 딴살림을 시작한 때부터였다. 죽이기가 퍽 끔찍하고 잔인스럽지만 여편네들은 못하나 사나이로서야 그까짓 것을 못하랴 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시작하였다. 그러나 붙들려서 펼떡펼떡 거리고 목을 베어서 피가 나온 뒤에도 살겠다고 푸덕푸덕 요동을 할 때마다 꽤 거북 하였다. 이번에도 또 불가불 닭을 잡게 되었다. 아직 사온 지가 몇 날이 못되어 발목에 노끈을 맨 대로 그냥 있다. 암탉 세 마리는 이제 죽을 줄도 모르고 알 낳는 닭이 수탉 찾는 이상한 소리를 하면서 붙들려 매인 끄나 불을 졸졸 끌고 먹을 것도 없는 뒤뜰에서 모 이를 찾는지 여기저기 왔다갔다 땅을 쫀다.

나는 도둑 잡으려는 순경처럼 뒤로 살살 따라가다가 끌고 다니는 끈을 밟아서 그 한 놈을 잡았다. 잡아서 두 발을 맞붙들어 매어 광 안에 내던졌다. 방금 옆에 있는 제 동무가 잡힐 때에 약간 놀란 듯이 잠깐 피하던 다른 놈은 또 여전히 발로 땅을 헤치고 먹을 것을 찾고 있다. 나는 또 같은 방법으로 끌고 다니는 끈을 밟아서 잡았다.

나는 부엌칼을 장 항아리에 갖다 대고 잠깐 갈았다. 붉은 녹이 없어지고 시퍼렇게 날이 섰다. 작은 공기 하나를 가지고 대문간으로 갔다. 한편 발로 붙들려 매인 두 발을 곽 밟고 한편 발로 두 죽지를 겹쳐서 밟고 모가지를 잡은 다음에 털을 좀 뜯었다. 그리고 칼로 거기를 몇 번 베었다. 몹시 아프고 괴로운지 펼떡펼떡 두 발을 놀리고 온몸을 푸덕푸덕한다. 나는 더욱 발에다 힘을 주고 손에 힘을 주어 목을 곽 붙잡고 또 몇 차례 베었다. 닭의 목에서는 붉은 피가 줄줄 흘러서 공기에 방울방울 떨어진다. 한참 붙들고 피가 나오고 죽기를 기다렸다. 손아귀가 아프도록 붙잡고 있었는데도 그래도 좀 약하기는 하나 이따금 몸부림을 친다. 나는 잊어버렸던 듯이 얼른 숨구멍을 찾아서 베었다. 그랬더니 씨르륵 소리가 나고 한 번 푸르르 떨더니 그만 늘어진다. 그래서 인젠 죽었구나 하고 그러면서도 튼튼히 하노라고 목을 비틀어서 죽지 속에 넣고, 발목 매인 끈으로 몸뚱이를 얽어 매어서 한편 모퉁이에 내던지고 그리고 다음 놈을 죽이려고 달라붙었다.

처음에 하던 모양으로 또 한 놈의 목을 붙잡고 칼로 목을 베고 있는데 옆에서 푸덕푸덕 소리가 난다. 나는 깜짝 놀라서 쳐다보니까 먼저 죽여 놓은 놈이다. 꼭 죽은 줄 알았던 놈이 아직도 펼떡필떡 뛰며 이리저리 딩굴고 있다. 나는 속으로 이놈이 아직도 살았나 하고 거기에 떠나간 행랑사람이 부엌소용으로 갖다 놓았던 다듬잇돌 깨어진 것으로 지질러 놓았다. 그리고 다시 한 놈을 마저 죽여 놓았다. 이번에는 피가 나오고 숨통까지 잘라도 졸연히 죽지 않아서, 목을 베고 베고 자꾸 베다가 아주 잘라 버렸다. 몸뚱이와 딴 토막이 나 버렸다. 이 모양으로 두 놈을 잡고 나니까 가뜩이나 더운 때라 등에 온통 땀이 배었다.

이것도 벌써 몇 번 해서 익어났기 그렇지 처음에는 서툴러서 목을 베어서 피가 잔뜩 흐른 놈이 별안간 요동을 해서(그것은 발로 잘 밟지 못하고 숨통을 자르지 않았거나 흑은 워낙 기운 센 놈이기 때문에) 피가 온통 옷에 튀고 얼굴에까지 튀게 된다. 이런 때는 손발이 떨리는 것을 나는 악을 써서 어떻게든지 죽여 놓는다. 이때에 끼약 하는 마지막 소리가 이상스럽게 귀에 울린다. 그리고 다 죽은 줄 알았던 놈이 펼떡필떡 공중에 뛰어오르는 것을 보고 무섭기도 하고 가없기도 하고 이상하였다. 제 원수되는 나를 저주하는 듯도 하였다. 그래 다시는 이 일을 아니하겠다고 생각한 일도 있었다. 그래도 이제는 익어서 아무렇지도 않다. 별로 힘을 안 들이고 한다. 그래도 이번에도 다 죽었던 놈이 펼떡거릴 때에는 저를 죽인 원수를 저주나 하는 듯하였다. 아무려나 목숨이 살려고 끝끝내 애쓰고 죽지 못해 펄떡거리는 것을 보고 당장에 같이 목숨을 가진 사람은 무심히 볼 수 없다. 차마 못할 짓이다.

3

그런데 내가 이번에 잡아 죽인 두 마리는 다 공주닭(흰 놈)은 아니었다. 이날에 두 마리만 잡기로 하였으나 어찌하여 흰 닭 한 마리만 남고 다른 두 마리가 붙잡히었는가. 두 마리만 잡기로 작정이 있었으나, 흰 닭은 두어두고 다른 두 마리만 잡기로는 가정회의 의결에도 없었거니와 내 마음에도 아무 작정이 없었다. 그리고 흰 닭은 숨거나 달아나고 다른 두 놈만 잡히기 쉽게 있어서 손쉽게 붙든 것도 아니었다. 세 놈이 다 몰려다니고 다같이 붙들려 매인 끈을 끌고 다니었었다. 그러나 내가 다른 두 놈만 붙잡고 흰 것을 아니 붙잡은 것은 다만 그것이 흰 것이라는 것밖에 까닭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까 흰 놈은 다른 것과 같이 정신없이 먹을 것을 찾지 아니하고 그 기름기 있는 털이 곱게 덮인 대가리를 약간 쳐 들어서 까뜩까뜩하면서 하늘을 쳐다보고, 남보다 분명히 점잖은 태도를 가지고 걸음걸이를 하였다. 그래 그것은 잡아 먹을 것이 아니요, 우리 집에 있는 손님이나 식구처럼 생각되어 그냥 둔 듯하다. 아니 그보다 우리 집 동쪽 모롱이에 심은 보잘것없는 화단에 있는 봉선화나 백일홍이나 금잔화같이 생각된 것이다. 왜 그런고 하니 그 흰 닭에 대하여는 잡으려는 뜻도 아니 가지고 다른 닭을 잡을 때에 그 편으로는 발도 향하지 않고 눈도 거들떠보지 아니하였다.

아무려나 세 마리 가운데서 다른 두 마리는 죽고 흰 닭 한 마리만 살았다. 그러나 다른 두 마리는 잡힐 때에 어찌하여 하필 우리만 잡는가 하고 원망하는 것 같지도 아니하고 흰 닭은 그 안 잡히는 것을 기뻐하거나 자랑하는 빛도 아니 보였다. 잡힌 두 놈이 우리만 죽는 것도 운명이다 하는 것 같지도 아니하고 흰 닭이 너희가 죽는 것도 운명이요, 내가 사는 것도 운명이다 하고 운명론을 가지는 것 같지도 아니하였다. 같이 살던 동무 둘이 잡혔으니 나도 그 모양으로 잡힐 터이지 하고 두려워 떨고 있는 것 같지도 아니하다. 그저 한 모양으로 사알살 돌아다녔다. 벌써 붙들어맨 것도 풀어 주었다. 그러나 달아날 듯싶지도 않다.

그런데 그날 저녁 일이다. 손님을 대접한 뒤에 저녁상을 물리고 손님들도 아직 가지 아니하고 앉아서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데, 누가(아마 잠시 손님으로 유하시던 우리 누님 같다) 소리친다.

「닭이 없어졌다!」

흰 닭이 없어졌다는 이 소리가 내게는 무슨 큰 변 난 소리처럼 들렸다. 흰 닭이 없어 졌어? 그럴 리가 있나 하면서 퍽 이상스럽게 생각되었다. 누님은 여기저기 좀 찾아보시다가, 나중에는 촛불을 켜 가지고 대문간과 뒷간과 뒤뜰을 온통 찾아보았으나 종내 찾지 못하였다. 그래서 여러 사람의 공론은 이러하였다. 흑은 어두우니까 어디를 나가서 박혀 자겠지, 흑은 잘 데라고 남의 집 담장으로 올라갔다가 붙들리었겠다 하고 이웃집을 의심하고 흑은 어둡기 전에 밖에 나가고 안 들어왔다고 했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처음 것도 아니요, 둘째 것도 아니요, 마지막 것과 합하였다. 종내 나가 버렸군,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아무 생각도 없이 곱게 집 안에 있는 줄 알았더니 종내 나가 버렸군. 은연 중에 우리는 자기를 사랑하여 왔지만 그래도 우리를 믿을 수 없던지 그만 달아나 버렸군. (암만 그래도 며칠이 못되어 네 손으로 또 내 목을 베어서 나를 지져 놓고 둘러앉아 웃고 지껄이며 즐기고 놀지. 지금 그러는 모양으로 ……나는 간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간 것 같다. 필경 우리가 한참 정신없이 닭고기를 먹으며 이야기하던 꼭 그때에 나갔다. 우리 가 저희 동무의 고기를 먹으며 아무 생각도 없이 즐기고 있는 것을 뜰 한모통이에서 보다못해, 혹 마루 밑에서 듣다못해 나가 버린 것 같다.

그래서 그날 밤에는 잘 자리에서도 흰 닭 생각이 나서 이리저리 생각을 하였다.

잠이 깊이 들기도 전에 역시 누님 목소리로「닭이 있다」하는 소리에 잠이 깨어 벌떡 일어났다. 나가버린 줄 알았던 닭이 참말 있다. 툇마루 모퉁이에 큰 테이블이 있고 그 위에 책들을 함부로 쌓아 두었었는데 닭이 그 위에를 자기 잘 자리로 정하고 웅크리고 있다. 그런 것이 마루에 켜 놓은 전기불이 비쳐서 자지를 못하고 꾹꾹 소리를 하는 것을 누님이 듣고 그러신 것이다. 누님과 아내는 픽 기뻐한다. 나도 기쁘다. 누님은 앨써 찾으시던 것이 있으니 기뻐하는 것이요, 아내가 기뻐하는 것은 닭 한 마리를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찾았음이다. 그러나 내가 기뻐하는 것은 앨써 찾던 것이 있음도 아니요, 닭 한 마리를 잃는 손해를 보지 아니함도 아니요, 공주닭이 없어지지 아니하고 있음이다. 공주 닭이 저녁에 생각하였던 바와 같이, 나를 돌이켜 흘겨보고〈나는 간다〉하고 나가지 아니함이었다. 그래서 나는 공주닭이 나간 불안과 이웃집을 의심하는 의심도 없어지고 마음 놓고 다시 잠이 들었다. 그리고 자리에 누워서 혼자 생각으로, 인젠 저놈을 기르리라 하였다.

그 다음에는 비는 아니 오고 매일 내리쬐어서 어떻게 더운지 마치 사람이 화로 속에 사는 것 같았다. 흰 닭도 더위를 못 견디어 낮에는 나무 밑에 가만히 엎드려 있고 선선한 저녁때에는 슬금슬금 밖에 나갔다가도 이내 들어오곤 한다. 그리고 어두우면 툇마루 책상에 놓인 책 위에 올라가 잔다. 아침 저녁 에는 메풀이(세 살 먹은 우리 집 애)를 시켜서 양식의 쌀에서 고른 뉘[note]직지 주:쓿은 쌀 속에 섞인 겨가 벗겨지지 아니한 벼 알갱이[/note]로 모이를 주게 하여 먹인다. 그만하면 이제 흰 닭은 우리 집 식구가 되었다.

4

나는 석왕사에 한 두어 주일 동안 있다가 돌아왔다. 나는 오면서 차에서도 공주닭이 어떻게 되었노, 생각을 하였거니와 석왕사에 있는 동안에도 여러 번 생각하였다. 저녁때에 차에서 내려 들어와서 옷을 벗고 숨을 돌린 뒤에 돌아보니까 뜰에서 사알살 돌고 있는 닭이 안 보여 이상스럽게 생각하였다. 혼자 생각으로 종내 나갔나? 그만 잡아 먹었나? 하였으나 닭의 말부터 먼저 묻기가 무엇해서 아무말도 않고 있었다.

저녁을 먹은 후에 나는 종내 물어 보았다.

「흰 닭이 어떻게 되었소?」

「잡아 먹었어요. 이가 잔뜩 끓어서 죽어 가는 것을 석유를 발라 주었더니 그래도 낫지 않기에 그만 잡아 먹고 말았어요.」

아내는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나는 이 말을 듣고 퍽 섭섭하였다. 나는 운명을 생각하고 그리고 이번 석왕사에서 들은 설교가 생각났다. 살생한 사람이 가는 끔찍한 지옥 이야기.그중에도 달걀을 늘 구워먹던 아이가 섶나무 불이 깔린 방에 갇혀서 안타까이 왔다갔다하다가 발이 데어 죽는다는 이야기를 생각하였다.

그날 저녁에 자려고 하는데 툇마루 테이블 위에서 닭이 꾹꾹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후에도 이따금 내 머리에는〈공주닭〉〈흰 닭〉 이런 생각이 지나갔다.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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